무가 있었다. 참 오묘한 말이다.
무는 없을 무. '없다'가 있었다.
문득 의문이 든다.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을 표현할 때 검은색의 어둠으로 표현하는 걸까?
어둠도 '암흑'이 있는 것 아닐까? 밝음에 빛이 있듯이 말이다.
우리는 언제부터 '아무것도 없다=기본색은 검정이다'로 생각하게 된 걸까?
오히려 색으로 나타낸다면 '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색'이 무의 상태에 더 맞지 않을까.
공간이 있나? 싶을 정도로 경계도 구분도 없는 빈 상태.
여기서 쓰인 '공허'라는 표현이 무(無)에 더 가깝지 않을까.
그래서 저자가 말한 무(無)는 진정한 무(無)의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.
공허에는 '중성의 힘'이 있었다.
또한 공허는 무언가가 되기를 '꿈'꾸고 있었다.
이래도 여전히 무(無) 인가?
무(無)에서 무언가가 태어나는 과정은
마치 나에게는 과일 껍질에서 초파리가 생겨나는 느낌과 비슷하다.
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더 공부해야만 한다.
(과학에서 말하는 無에서 무언가 태어나는 건 사실 無가 아니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긴 하더라)
행동을 이끄는 어떤 마음이 생겨나고, 아기가 무언가를 배워가고,
빈 종이에 하는 창작도 無에서 무언가 태어나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.
사실은 모두 의지에 따른 걸까.
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품고 있는 우주의 알은 그 의지를 나타낸 걸까.
인간은 누구보다도 커다란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.
이건 우리가 지구에 사는 생명체 중 가장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.
그리고 사실 이 말도 인간이 만들어냈다.
난 여전히 모르겠다. 인간에게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무엇인지.
우주에서 생겨난 이 알이 제대로 깨진 것인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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