나는 간혹 나보다 작은 존재를 얕게 보는 경향이 있다.
그들에게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는 걸 간과한다.
개미와 마찬가지로 쥐도 주의 깊게 관찰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.
그동안 쥐를 징그럽고 해로운 동물로 생각했더라도 이번 포스팅은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.
쥐를 관찰해볼 생각을 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
낭시 대학 행동 생물학 연구소의 디디에 드조르 연구자가 대신 관찰해 주었다.
첫 실험은 여섯 마리의 쥐를 수영장 건너편에 사료통이 있는 우리에 넣고 그들의 행동을 보는 실험이었다.
여섯 마리의 쥐는 다음과 같은 네 분류로 나뉘었다.
수영해서 구해온 먹이를 빼앗기는 피 착취형 두 마리,
피 착취형의 먹이를 빼앗아 먹는 착취형 두 마리,
헤엄을 쳐서 구해 온 먹이를 빼앗기지도, 뺏지도 않는 독립형 한 마리,
마지막 한 마리는 헤엄을 치지도 않고 먹이를 빼앗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형이었다.
위 실험을 통해 개미 사회에도 역할이 있듯이 쥐들 사이에도 각자의 위계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.
단체의 성공을 중요시하는 평등한 개미 사회와 달리
이들은 뺏고 빼앗기고, 빼앗지 못하거나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네 분류로 나뉜다.
두 번째 실험은 스무 개의 우리를 만들어서 한 똑같은 실험이다.
어느 우리에서나 똑같은 역할 배분,
즉 피 착취형 두 마리, 착취형 두 마리, 독립형 한 마리, 천덕꾸러기 형 한 마리가 나타났다.
이 실험에서 더 흥미로운 건 여러 집단을 만들어도 똑같은 분류로 나뉜다는 것이다.
이렇게 네 분류로 나뉘는 것은 쥐들의 본능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.
세 번째 실험은 착취형에 속하는 쥐 여섯 마리를 따로 모아서 우리에 넣어봤다.
그 쥐들은 밤새도록 싸웠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쥐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나뉘어 있었다.
다른 유형들을 한 우리에 모아놔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결과가 나타났다.
유형별로 모아놔도 피 터지게 싸울지언정 같은 분류로 나뉜다.
아무래도 쥐들의 본능이 맞는 것 같다.
네 번째는 더 커다란 우리에 2백 마리의 쥐들을 넣어서 실험을 계속했다.
이튿날 아침 세 마리의 쥐가 털 가죽이 벗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.
이 결과는 개체 수가 증가할수록 천덕꾸러기 형의 쥐들에 대한 학대가 가혹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.
개인적인 생각으로 천덕꾸러기 형의 쥐들에 대한 학대가 가혹해지는 이유는
천덕꾸러기 형을 공격할 유형이 다른 유형보다 많기 때문인 것 같다.
빼앗지도 못한다는 것은 빼앗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것이고
실패에 따른 대가로 피 착취형과 착취형에게 공격받았을 것 같다는 추측이다.
마지막으로 쥐들의 뇌를 해부해본 결과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쥐는 착취형 쥐들이었다.
착취자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잃고 노역에 종사해야 하는 날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.
이런 결과는 많은 추측을 해볼 수 있는 결과인 것 같다.
사실 이들도 빼앗아 먹으면서 이게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스트레스가 심했던 걸까?
아니면 작가의 말처럼 지위를 잃고 노역에 종사해야 하는 날이 올까 봐 전전긍긍했던 걸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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